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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와 관련된 이야기

한국사와 관련된 이야기1 - 병자호란과 관련된 고전소설

by 홀리페페 201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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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한국사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고전소설 <유충렬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상당히 허구적인 요소도 가미된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사건이었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군담소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소설로서 전쟁이야기를 주 소재로 삼는 소설을 말한다. 이런 군담소설은 실제 역사적 주인공의 일생이나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는가를 기준으로 크게 ‘역사 군담소설’과 ‘창작군담 소설’로 나누어진다. 역사 군담소설의 경우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쓰여 진 <임진록>이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임경업전> 등이 대표적이며, 창작군담소설의 경우 허구적인 인물과 배경을 중심으로 한 <소대성전>, <조웅전> 그리고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유충렬전>이 대표적이 작품이다.

<유충렬전>은 작자와 연대 미상의 국문 소설이며 영웅소설 혹은 군담소설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필사본·목판본·활자본으로 간행되어 50여 가지의 이본이 있지만 그 내용상의 차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웅전>과 함께 당대 대중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영웅소설로서 영웅의 일생이라는 영웅소설의 유형적 구조를 가장 충실히 유지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본고에서는 우선 <유충렬전>이 가지고 있는 구조와 그 구조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며, 나아가 <유충렬전>을 특히 ‘귀족적 영웅소설’의 범주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귀족적 영웅소설은 민중적 영웅 소설과 달리 중세적 사고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충, 효, 열의 사상과 봉건적 체제의 수호를 중시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당대 사회에 대한 부조리와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인식의 한계가 드러나며, 등장인물은 선과 악의 이원적인 유형성을 지니게 되고, 결말은 주로 행복으로 처리 된다는 특징이 있다. <유충렬전>의 귀족적 영웅소설로서의 면모를 살펴 본 다음에는 <유충렬전>이 당대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까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유충렬전>은 전형적인 영웅소설로서 ‘영웅의 일생’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유충렬전>에서 드러나는 영웅의 일대기는 출생과 성장, 고난과 시련, 시련의 극복과 출세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명나라 영종 때 정언주부의 벼슬을 하고 있던 유심이 남악 형산에 정성을 다해 빌어 신이한 태몽을 꾼 뒤 아들을 얻어 이름을 충렬이라 지었다.

② 충렬이 7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 유심이 간신 정한담과 최일귀의 모함으로 귀양길에 오르 게 되었고, 부자의 신표로 죽도를 충렬에게 주었다.

③ 정한담의 계략으로 충렬은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고 고난을 겪다가 재상 강희주를 만나 사위가 된다.

④ 충렬이 15세가 되던 해에, 강희주가 유심을 구하려고 상소를 올렸다가 정한담의 모함으로 귀양길에 오른다. 강희주의 가족은 난을 피해 모두 흩어지게 되고 충렬은 백룡사에 들어가 술법을 배운다.

⑤ 정한담이 남적에게 항복하고 남적의 선봉장이 되어 천자를 공격할 때 충렬이 등장해 남적의 선봉장인 정문걸을 죽이고 천자와 나라를 구한다.

⑥ 충렬은 호왕에게 잡혀간 황후·태후·태자를 구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유배지에서 고생하던 아버지 유심을 만나고 장인 강희주를 구한다.

⑦ 명나라로 돌아와 이별하였던 어머니와 아내를 찾고, 정한담을 쓰러뜨린 뒤 벼슬에 올라서 부귀영화를 누린다.

 

충렬은 개국공신 유 가(家)의 13대손인 ‘유심’과 이부 상서 장윤의 딸인 ‘부인 장씨’의 자손으로 귀한 혈통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오래도록 자식이 없던 부부가 남악산을 찾아 치성을 드리고 얻은 자식이다. 또한 천상계 ‘대장성’의 환생이라는 고귀하고 기이한 배경과, 선녀가 나타나 부인 장씨의 출산을 돕는 등 기이한 출생 장면의 모습에서 비범한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충렬이 7세가 되던 해에 간신들의 계략에 의해 천자가 아버지 유심을 귀양 보냄으로써 충렬은 아버지와 이별하게 된다. 간신 ‘정한담’은 도사의 전언으로 충렬의 집을 불태워 남은 가솔들을 죽이고자 하는데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장 부인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도움을 주나, 결국 회수에서 잡혀 충렬은 물에 빠지고 장 부인은 잡혀간다. 하지만 충렬은 바위에 올라앉아 있다가 남경 장사치들에 의해 구출된다. 또한 ‘회사정’에서 아버지 유심이 남긴 글을 보고 충렬 역시 빠져 죽고자 하나, 영릉 땅의 ‘강희주’의 도움을 얻어 목숨을 구하고, 그에게 거두어져 강희주의 딸과 혼인을 하게 된다. 부모와 모두 이별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도인과 남경 장사꾼, 강희주로 이어지는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충렬은 위기를 극복한다.

작품은 개인과 가문의 위기에서 시작하여 역적으로부터의 국가적 위기까지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극복 과정은 단순히 한 개인, 한 가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와 개인의 문제를 결부시킴으로써 더욱 더 주인공의 명분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고난의 과정에서 ‘결혼’이라는 장치를 통해 강희주가 단순히 조력자를 넘어 가족이 됨으로써 주인공의 세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이후 강 희주 역시 간신들에 의해 유배지로 떠나게 되고, 이로 인해 충렬과 부인 강 낭자는 서로 헤어지게 된다. 충렬은 ‘서해 광덕산 백룡사’에 거처를 두고, 대승에게 도술을 배우며 성장한다. 이후에 천자는 정한담과 최일귀에 의해 큰 위기를 겪고, 마침내 항복하려던 차 갑주와 장검 그리고 말을 획득한 충렬이 등장한다. 이후의 계속되는 군담 장면에서 충렬은 정한담 일파의 정문걸, 최일귀, 호왕, 마응, 마학, 마철 등과 싸워 이기고, 정한담의 꾀에 넘어가는 고난을 겪지만 오히려 인질로 잡혀간 황후, 태후, 태자 등을 구출해내고, 포판에 귀양 가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하여 강 희주, 강 낭자와도 재회하게 된다. 이후 충렬은 남평과 여원의 옥새를 하사받고, ‘대사마 대장군’의 직책에 오르며 승리자로써의 입지를 굳건히 한다.

이처럼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는 충렬은 악인과 대립하여 승리하고 나라를 구하고 흐트러진 질서를 회복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영웅성은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민중들의 욕망을 대변한다. 즉 전반부에서는 주인공의 고난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후반부에는 주인공의 활약과 세력을 잃은 인물의 복권과정을 통해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특히 충렬이 천자를 위해 싸워야 할 상대는 자기 개인의 보복을 위해 싸울 상대와 일치하기에 독자들은 전적으로 유충렬을 자기화하게 된다. 이를 통해 국가의 적대자와 주인공 개인의 적대자가 같은 대상이기에 충렬의 싸움은 사회적 차원의 것과 개인적 차원의 두 측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품의 결말부분에서 나타난 가족의 이산과 재회의 문제는 가족에 대한 윤리의식이 무너지고 있던 조선 후기 사회의 소생을 위한 염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충렬이 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데리고 온 부모와 강희주, 강낭자 등은 당시에 잃어버린 윤리의식이 돌아옴을 의미한다. 이로써 본 작품이 중세 봉건적 가치인 충과 효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유충렬전>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첫 번째 역사적 현실은 병자호란기의 모습들이다. 특히나 <유충렬전> 초반부에 가달정복을 두고 유심과 정한담 일파가 대립하는 모습은 병자호란 기에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과 상당한 유사점을 보인다. 또한 유충렬이 호국과 대립하고, 황태후 일행 등이 호국으로 붙잡혀 가는 모습들을 통해 병자호란의 모습들을 어느 정도 추측 할 수 있다.

좀 더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우선 실제 역사적 사실인 병자호란에 대한 정보를 밝히며 <유충렬전>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병자호란의 원인>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광해군 때의 명과 청나라 사이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으므로, 1627년 후금의 침입을 받게 되자 형제의 의를 맺었는데 이를 정묘호란이라 한다. 그러나 1632년 후금은 만주 전역을 석권하고 명나라 북경을 공격하면서, 아직도 속으로는 명나라에게 사대하는 조선을 즉 후방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양국관계를 형제 국에서 군신관계로 고칠 것과 황금백금 1만 냥, 전마 3,000필 등 세폐와 정병3만을 보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다. 또한 1636년 2월 용골대. 마부태 등을 보내어 조선의 신사를 강요하였으나, 인조는 후금사신의 접견마저 거절하고 8도에 선전문을 내려, 후금과 결전할 의사를 하는데, 1636년 4월 후금의 태종은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청이라고 고쳤으며, 조선이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왕자·대신·척화론자를 인질로 보내 사죄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은 주화론자보다는 척화론자의 세력이 강하여 청의 요구를 묵살하기에 이른다.

결국 병자호란의 결정적인 원인은 조선 내부에서 주화론자와 척화론자의 대립이 맞섰고 그 중에서도 척화론 자의 의견이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결국 청나라의 침입을 받게 되는데 이는 <유충렬전>초반부에 가달 정벌을 두고 벌어지는 유심과 정한담 일파의 대립과 비슷하다. 특히나 <유충렬전>에서도 주전론을 주장한 정한담 일파의 의견이 채택되어 호국의 침입을 받게 되는데 이는 병자호란이 척화론의 주장이 채택되므로 발생했다는 것과 상당한 유사점을 보인다.

이 밖에도 병자호란으로 인해 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게 되는데 이는 <유충렬전>에서 황태후 일행이 호국으로 끌려가게 되는 점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작품 전반부에는 실제 역사적 사건인 병자호란과 <유충렬전>의 이야기들이 상통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후반부에는 그 내용이 조금씩 달라진다. 특히나 유충렬이 호국으로 쳐들어가 황태후 일행을 구출하고, 호국을 정벌하는 모습들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는 대비되는 이야기로 병자호란기 우리 민족들이 겪은 아픔에 대한 복수의식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추측 할 수 있다. 특히나 이 부분에서는 단순히 <유충렬전>이 중세 봉건적 이념의 수호나, 이상주의의 실현만을 추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병자호란의 복수의식이 단순히 귀족들만이 추구하고자 했던 의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유충렬전>에 드러나는 청에 대한 복수 의식은 무너진 왕권과 민중들이 받은 고통에 대한 통합적인 복수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작품에 드러나는 역사적 현실의 모습은 조선후기 만연했던 ‘당쟁’의 모습들이다. 당쟁이란 조선 중기 ·후기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붕당간의 대립을 일컫는 말로서 그 대립 속에서 한 붕당이 쇠하고 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유충렬전>에서도 그런 모습이 일부 드러난다. 작품 초반부에서부터 유심과 정한담 일파의 대립이 드러나는데, 여기서 유심 일파는 패하게 되고 유심을 유배를 겪게 된다. 강희주 역시 상소를 올렸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를 보아 유심과 강희주는 당쟁에서 패한 세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고, 득세한 정한담 일파는 당쟁에서 권력을 획득한 붕당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유충렬전>에서는 유충렬이 정한담 일파를 물리치고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는 결말을 맺고 있는데, 이를 통해 <유충렬전>의 작자 층을 어느 정도는 추측 할 수 있다. <유충렬전>의 작자 층은 당쟁에서 패배하여 몰락한 양반계층 혹은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지방에서 은거하는 세력으로 추측 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권력 쟁탈의 야욕까지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사에서 병자호란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시간에는 그런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유충렬전>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런 현실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고 한국사를 공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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